왜 스타트업에게 네트워크가 필요할까?
폴그레이엄의 에세이는 좋은 출발점이었지만, 실제 교훈은 다른 창업가들의 생생하고 솔직한 이야기에서 나왔습니다. 대게 술자리에서요. 그런 다음에야 우리가 직접 레슨런을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 알렉시스 오하니안, 레딧 창업가[1]
언제나 위대한 창업가는 양질의 네트워크 위에서 성장했습니다. 레딧은 폴 그레이엄과 YC를 만났고, 스티브잡스는 마이크 마쿨라를 만나면서 여러 투자자와 전문가 네트워크를 만나 초기 성장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이러한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최근에는 도메인 별로 버티컬한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도 합니다.[2]
이런 밀도 높은 창업가 네트워크가 한국에도 있습니다. 아산나눔재단에서 운영 중인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이하 정창경)입니다. 올해로 13회를 맞이한 정창경은, 아산나눔재단에서 운영하는 예비/초기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입니다. 마이리얼트립, 클라썸, 두들린 등이 알럼나이로 있습니다.
무엇보다 엄격하게 선발된 밀도 높은 창업가 네트워크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면에서 특별합니다. 최근까지는 약 110: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12회 정창경에서 대상을 수상한 남호님을 만나 그 경험에 대해 여쭤보았습니다. 남호님께서는 19년도에 쿼타북을 창업해 21년에는 YC에 합격하며 많은 창업가 네트워크를 경험하셨습니다. 현재는 Task와 Goal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SaaS, 오프라이트를 만들고 계십니다.
남호님의 이야기 요약
- YC에 합격한다고 무조건 좋은 네트워크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한국은 같은 소속이면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생긴다는 인식이 있지만, YC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배치가 끝날 때까지 누구와도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 정창경을 운영하는 아산나눔재단은 YC와 달리 지분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항상 일반적으로 주기만 합니다. 모든 창업가가 이런 경험을 하다보니, 마음 속에 긍정적인 부채감을 가지게 됩니다. 덕분에 다른 창업가 네트워크 보다 더 밀도 있게 유지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아산나눔재단이 제공하는 55개의 베네핏과 37개 분야 별 전문가에게 언제든지 1:1 멘토링 받을 수 있어요.
짧은 소개를 부탁드려요. \
생산성 제품을 시작하신 계기가 있나요?
지금까지 스타트업 업계에 있으면서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바쁘다는 점과 정작 중요한 일에는 제대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첫 번째는 나에게 들어오는 중요한 요청을 잊지 않고 전부 기억하는게 어려웠고, 두 번째는 목표에 중요하지 않는 할 일에 시간을 계속해서 투입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스타트업 사람들은 현재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문제에 몰입하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현재로 앞당겨야하는 사람들인데, 쓸데 없는 일들은 OFFLIGHT(불을 끄다)하고 진짜 중요한 일에 시간을 쓰도록 돕자는 의미로 만들게 되었습니다.[3]
OFFLIGHT라는 표현이 좋네요.
그럼 바로 YC 스토리부터 여쭤볼게요.
YC를 하시면서 가장 크게 성장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안 그래도 고민을 해봤는데, YC 파트너들은 크게 두 가지를 제공해줍니다. 정석에 가까운 정보와 양질의 인적자원입니다. 제가 YC 시간동안 사람들과 교류하고 액션하면서 얻은 인사이트를 정리해둔 문서를 보여드릴게요.
주로 이런 내용이 있어요.
-
좋은 채용을 하고 싶은가? 애초에 채용이 필요하기는 한가?
-
PM을 채용해야하는가? -> 그건 대표의 일이다
-
리쿠르터를 채용한다고? -> 아니 그건 대표의 일이다
-
세일즈 매니저를 채용한다고? -> 아니 그건 대표의 일이다
-
인바운드로 절대 좋은 지원자는 들어오지 않는다.
-
고로 무조건 넌 아웃바운드 해야한다
-
리쿠르팅과 세일즈는 같다. 600명에게 접근, 운 좋으면 2명이 인터뷰에 응한다
-
그래서 미친듯이 아웃바운드 해야한다
나아가 주말마다 함께 모여 지난 주 성과를 공유하고, 매주 최소 5%의 성장을 못했다면 그 이유를 나눕니다. Mixpanel 대표랑 Airbnb 대표가 나와서 자신들이 실패했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고, Superhuman 대표가 나와서 PMF와 적정 가격을 찾기 위해 시행착오 겪은 것들을 공유해줍니다.[4]
사실 다 뻔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들이 큰 성과를 직접 이룬 사람들이다보니 확 와닿는게 있습니다. 사실 YC 스타트업 스쿨에 들어가서 공개되어 있는 컨텐츠만 소화해도 YC 교육의의 60%는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결국 내 마음에 얼마나 깊이 새겨지는가는 메신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런 사람들이 Getting Hands Dirty 했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거죠.
“슈퍼휴먼, 에어비엔비, 믹스패널 만든 사람들은 이런 일까지 했는데 나는 뭐하고 있는거지. 정신 차리자”
그래서 일련의 과정 중에서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모르겠습니다. 이게 YC가 준비한 엄청넌 정보들을 머신건에 장전에서 내 머리에 때려박는 과정인데, 그 장전된 총알 하나하나의 퀄리티가 엄청나서 전부 소화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YC가 가져가는 지분이 꽤 있는데도 대표들이 지원하는 것은,\
YC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도 큰 것 같아요.
하지만 YC에 합격한다고 다 네트워크가 생기는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한국의 대학을 생각해볼까요. 일반적으로 입학 직후에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종의 '떠먹여주는 네트워킹'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내향적인 사람도 같이 행사 참여하고, 술 마시다보면 친해져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보니 특정 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네트워크의 형성으로 생각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반면 YC는 어떤 각개전투에 가깝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배치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명과도 친해지지 못한 채 프로그램을 마무리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다들 유저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중간에 시간을 내어 동기들과 친목을 다진다는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적극적인 성향일수록 유리한 겁니다.
정리하면 YC는 어쨌든 정글입니다. 정석에 가까운 인사이트가 정말 많지만 전부 소화할 수는 없는 그런 정글 말입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정보와 사람은 많지만,\
본인의 태도에 따라 취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말씀이네요.
그럼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 지원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사무실입니다. (하하) 정창경에 합격하면 마루에 입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요. 그리고 제가 단어의 유래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마루의 뜻을 찾아본 적이 있어요.
높은 산의 마루 + 집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이렇게 두 의미가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실 이전에 VC로 활동할 때도 자주 오던 건물이었는데, 이름의 유래를 알게되니 더욱 정이 붙었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고 정주영 회장님의 일대기를 뒤늦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충격이었습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맨땅에서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일구셨죠. 아무것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건설과 배, 자동차를 만들어 오늘날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는 제네시스를 보니, '우리 회사가 처음으로 둥지를 틀어야하는 곳이 있다면 꼭 여기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마루라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나보다 100배 더 어려운 문제를 풀었던 사람도 있다. 나는 이런 인프라 위에서 창업하는데 힘내자. 정 회장님께서 날 보시면 얼마나 엄하게 혼내시겠냐'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용기와 나아갈 힘도 주는 그런 신기한 공간입니다.
YC와 비교했을 때, 정창경은 어떠셨나요?
한 마디로 표현하면 YC와는 다르게 ‘엄마의 따뜻한 품'인 것 같습니다 (웃음)
아산나눔재단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분들께서 얼마나 입주사를 아끼고 배려해주시는지 압니다. 정창경을 운영하시는 주희님께서도 어떻게 하면 내가 스타트업을 조금이라도 더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시는게 마음으로도 느껴집니다.
그리고 다른 입주사 분들도 서로를 도우려는 Pay It Forward 문화가 정말 잘 정착되어 있습니다. 타 코워킹 커뮤니티에서도 늘 노력을 하지만 항상 실패하는 부분이 이런 부분 같은데, 마루는 크게 3가지
그리고 무엇보다 재단분들 뿐만 아니라, 마루에 입주해 있는 기업들도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려는 Pay it forward 문화가 정말 잘 정착되어 있어요. 위워크나 패스트파이브와 같은 코워킹 커뮤니티에서도 늘 많은 노력을 하지만 항상 실패하는 부분이 이런 부분인데, 마루는 잘 운영되는 데에는 크게 3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크게 3가지 이유가 생각납니다.
1. 일방적 수혜의 관계
YC와 스타트업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각자의 이익을 위한 파트너십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YC는 투자금, 지식, 그리고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스타트업은 지분을 제공합니다. 합리적 거래가 이루어졌으니 그 이상의 헌신을 하는게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반면 정창경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일방적으로 받게 됩니다. 할머니 집에 온 손주 같달까요.
2. 긍정적 부채감
그런데 한 없이 받기만 하면 '이걸 내가 갚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 아산나눔재단이 창업가들에게 부탁합니다. 본인들에게는 아닐지언정, 동료 창업가들에게 받은만큼 돌려주라는 것이죠. 창업가 입장에서도 그동안의 부채감 때문에라도 타 입주사의 부탁을 쉽게 거절할 수 없습니다.
사실 공유 오피스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을 정말 많이 봤지만, 잘 돌아가는 것을 본 적은 많지 않습니다. 근데 마루에서는 가능한 이유를 찾자면 이 긍정적 부채감 덕분인 것 같습니다.
3. 초기 제품/고객 발굴에 유리
// 디스콰이엇과 오프라이트가 함께 초기고객을 모아 마루를 활용해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초기 PMF 를 찾아갈 때 가장 좋은 것은, 고객 바로 옆에 앉아서 제품을 쓰게 하고 바로 피드백 듣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메세지 보내고, 일정잡고, 이동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련의 과정이 굉장히 어렵죠.
이런 점에서 마루는 천국 그 자체입니다. 슬랙에 DM 한 번이면 최대 5분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실제로 DM 아웃바운드를 통해서 100여 명 가까이 만났습니다.
도언님은 오프라이트 헤비유저인데요, 에러사항이 있을 때 360으로 직접 찾아와 CS를 해주시곤 합니다.
아산나눔재단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정말 중요한 존재 같습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아쉬운 점도 있었을까요?
크게 컨텐츠와 문화 면에서 개선할 수 있는 포인트가 생각이 납니다.
1. PMF와 회사 운영을 위한 교육
먼저 초기에 선배 기업가 분들과 투자사 분들이 오셔서 세션을 해주십니다. 조심스럽지만 100% 기업가 분들이 스피커로 오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극초기에는 결국 누가 우리의 고객이고,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빠르게 실험해야하는지 알려줄 선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신은 왜 실패했고, 우리는 그 실패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교육 측면에서는 YC 처럼 도제식으로 만들어진 교육 컨텐츠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다들 창업이 처음이다보니 채용 잘하는 법, 코파운더와 갈등 해소하는 법, 지분 나누는 법, 아웃바운드 세일즈하는 법, 가격 정하는 법 등등 오퍼레이션 영역의 일들을 어려워합니다. 기존에도 있지만, 플레이북 형태로 잘 정리되어 있다면 초기 창업가들에게 유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 페이스메이커
YC에서는 4~8개의 스타트업이 한 그룹이 됩니다. 그리고 선배 창업가가 내정되어 매주 단위로 각 팀의 목표를 함께 설정하고, 달성 유무를 피드백합니다. 서로의 결과에 챌린지를 걸기도 합니다.
이 정도로 격하지는 않더라도, 정창경 동기들끼리 주기적으로 상황을 공유하고, 때로는 경쟁도 하면서 사기를 북돋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앞으로 오프라이트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FE 개발자 분을 찾고 있어요."
4월에는 미국 진출을 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는 미국에 발 담글 타이밍을 재고 있었는데, 이제는 심장마비가 와서 죽을지언정, 물 속으로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함께 OFFLIGHT를 만들어갈 새로운 팀원을 찾는 중입니다. React에 대한 실무경험이 있고, Task 관리 툴에 관심이 많은 분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 : One Thing I Wish I’d Had When We Started Reddit
[2] : 깃헙의 CEO였던 냇 프리드먼과 YC의 AI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다니엘 그로스가 AI Grant라는 배치를 운영 중이다. Perplexity, Cursor 같은 유명 AI 스타트업 팀이 합류해 AI 스타트업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3] : 오프라이트를 만들고 있는 남호님과 진홍님의 글. 왜 두 분이 오프라이트를 만들게 되었는지 이전에, 어떤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두 분의 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서 종종 찾아보는 편이다.
[4] : 남호님께서 에어비엔비 대표의 강의를 듣고 적은 메모
[5] : 도전하는 초기기업가들의 꿈과 열정이 펼쳐지는 마루, 아산나눔재단 ‘MARU180’
[6] : Stripe의 콜리슨 형제가 초기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Do things that don’t scale의 정석으로 알려진 콜리슨 설치(Collison Installation) 세일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