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초보자가 되는 불편함
2024. 3. 24. · 6분 읽기
몇 주 전, "직군이라는 허상" 글을 올렸다. 많은 메이커분들께서 공감의 반응을 남겨주셨다.
그만큼 스타트업에는 분야와 적성을 가리지 않으며 일하는 분들이 많다. 디스콰이엇은 Operator라는 직함을 사용하는데, 한 번은 국내 유니콘의 공동창업가 한 분이 내 명함을 보시고는,
직합이 '죄다 함'이네요!
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소위 스타트업러들은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배워나가야하는 상황에 자주 처한다. 그리고 언제나 초보자가 되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응용하며 직관을 쌓아간다. 어제는 노코도를 배워 제품을 만들었다면, 내일은 컨텐츠를 공부해 마케팅을 준비하고, 다음 날에는 GTM 사례를 학습해 제품을 팔아본다.
이 과정이 성공적이었다면 고객이 유입되고 제품의 유지보수를 위해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해진다. 누군가는 (HR)채용을, 누군가는 투자(IR)를, 누군가는 지금의 모멘텀을 살리기 위한 퍼포먼스 마케팅(PR)을 직접 해보며 시행착오를 겪는다.
하지만 "무언가를 잘 모르는 상황"이 편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초보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익숙한 것을 찾게 된다.
질문이 생긴다. 그럼 우리가 뛰어드는 제품과 시장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진 사람을 영입해야하는걸까?
초보자가 되는 기분에 익숙한 사람
사실 직접 채용의 전과정에 참여해본 적이 없어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 않을까 싶다. 절반이 맞는 이유는, 지닌 지식/경험 데이터가 많을수록 탐구에 필요한 시간이 감소하고 적극적으로 직관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초보자가 되는 기분에 충분히 익숙한가'라는 질문에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초보자가 되는 데 익숙한 사람은 언제나 이방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여러 번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처음부터 배우고 결과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기에, 무지를 마주해도 위축되지 않고 빠르게 배워나갈 가능성이 높다.
초보자가 되는 기분에 익숙한 사람이란, 항상 이방인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다. 더 구체적으로 정의하면, "이전에도 여러 번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처음부터 배워가며 결과를 만들어봤으며, '무지의 기분'에 익숙한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은 앞으로도 무지를 마주했을 때 위축되지 않으며, 빠르게 배워나갈 확률이 높다.
또한 이런 부류의 사람은 실패를 '정보 습득의 과정'으로 인지한다. 어차피 잘 모른다면 실패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고, 중요한 것은 양질의 교훈을 남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패에서 낙담보다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빠르게 배워나가면서 스스로의 직관을 키워나간다.
초보자에서 벗어나는 방법
그럼 어떻게 하면 초보자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나와 유사한 성향의 롤모델을 정하고 의사결정 기준을 모방하는 방법을 좋아하고 추천한다. 구체적으로 아래의 요소를 통해 질 높은 모방을 할 수 있었다.
1. 배우고 싶은 명확한 패턴 찾기
모든 것을 모방하려고 하면 안된다. 대부분 우리가 롤모델로부터 배우고 싶은 것은 의사결정 방식 또는 삶의 루틴과 같은 하나의 "패턴"이다. 64GB 램이 소화하던 일을 4GB 램이 소화하려 하면 과부화가 올 수 밖에 없다. 명확한 패턴을 정의하고, 그걸 배워야한다.
2. 기질이 유사한 롤모델 찾기
롤모델을 정할 때 흔히 '업계에서 유명한 일잘러'를 떠올리며 무작정 모방을 시도한다. 이건 큰 실수다. 나도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람마다 쉽게 바뀌지 않는 기질이 있다는 점을 알았다. 만약 나랑 기질이 전혀 다른 사람을 모방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강점도 배울 수 없고, 나의 강점도 극대화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기질이 다른 것은, 다른 말로 내가 쉽게 타협하기 어려운 의사결정 기준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누군는 직설적이고 거침없이 피드백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걸 관계지향적인 사람이 억지로 모방하려고 한다면 인간관계도 틀어지고, 내 강점도 사라진다. 어떠한 경우에서는, 롤모델은 위험을 감수하며 기회를 잡지만, 나는 위험을 최소화하며 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잘할 수도 있다. 누군가를 모방하는 것은 빠르게 직관을 쌓을 수 있지만, 결국 그 목표는 나의 강점을 레버리지 하기 위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모두가 초보자
인스타그램을 창업한 Kevin Systrom가 얼마 전 새로 창업한 뉴스 플랫폼, Artifact의 종료를 발표했다. 그는 발표 이후의 인턴뷰에서, '앞선 창업이 성공한 상태에서 그 다음 창업을 하는 상황'이 부담되고 어렵다는 인터뷰를 했다.
결국 모두가 '초보자 > 숙련자 > 초보자'의 순환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인지하고, 어떻게 하면 빠르고 즐겁게 배워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이 적합한 방향이라 생각한다.